어느 주말 오후, 나는 창고 정리를 하다가 먼지가 수북한 벽걸이 달력을 발견했다. 2006년. 매달 그림이 바뀌는, 계절 일러스트가 귀여운 달력이었다. 호기심에 넘겨보다가 9월 페이지에서 손이 멈췄다.
날짜는 9월 18일, 월요일.
그날만 유독 이상했다. 빨간 펜으로 ‘ㅇㅇ이 생일’이라고 쓰여 있었고, 바로 아래에 연필로 덧댄 글씨가 있었다.
“이 날은 반복된다. 멈추면 안 돼.”
나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냥 장난인가 싶었지만, 머릿속에 그 날짜가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며칠 후, 문득 휴대폰 날짜가 바뀌지 않은 걸 알았다.
9월 18일, 월요일.
알람도 울리지 않고, 뉴스도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평소처럼 움직이지만, 말투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반복적이었다. 마치 거대한 리허설 속을 걷는 느낌.
그날 밤, 거울을 보는데 눈빛이 이상했다. 내 표정이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머리를 감았는데, 다시 마르니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 있었다. 배가 고파 밥을 먹었는데, 곧장 원래대로 배가 고파졌다.
무엇 하나, ‘지속’되는 것이 없었다.
이 하루는 멈춰 있는 중이었다.
벽걸이 달력 속에서.
나는 그 오래된 종이 틈에 박제된 하루를 다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달력을 다시 펼쳐 9월을 찢어냈다. 그러자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바뀌었다. 시계가 다시 움직이고, 밖에서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휴대폰을 보니 날짜는 바뀌어 있었다.
9월 19일, 화요일.
하지만 그 이후로, 달력의 빈자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놓고 온 듯한 불안감. 그리고 오늘 아침, 책상 위에 누군가 놓고 간 쪽지를 발견했다.
“넌 하루를 부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달력은 기억해. 찢긴 날짜는 돌아온다.”